깊은 산속 야생화처럼 핀 수목원 평창 보타닉가든

평창 수목원 보타닉가든

코로나 블루. 낯선 병증을 받아들고 허덕이다 도시를 떠났다. 숨쉴 곳이 필요해. 신열처럼 오가는 고립과 우울감을 떨구고 가는 길. 하늘이 파랗다. 같은 블루라도 보는 눈은 물론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스레 열어주는 하늘이다. 그러고 보니 이리 맑고 푸른 하늘도 오랜만이다. 여름 내내 내렸던 비가 떠올랐다. 생각만해도 축축한 기억들. 그래도 가을은 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 평창 보타닉가든으로 가는 길이다.

새말IC에서 빠져 안흥에서 평창 방림면으로 들어갈 생각을 했는데 내비게이션은 둔내IC가 출구라고 알려줬다. 횡성 둔내에서 평창 쪽으로 넘어가는 게 빠르다는 뜻이다. 대신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래도 좋았다. 깊은 산들의 경계를 외줄기 도로가 힘겹게 넘어간다. 그 길에서 보는 산세가 새롭다. 늘 보는 산, 익숙한 풍광이 아니었기에 더 좋았다. 고개를 넘어 7부능선쯤 내려가는데 왼편으로 평창 보타닉가든 정문이 보였다.

평창 보타닉가든은 비스듬한 산비탈을 다듬어 만들었다. 이런 산골에 수목원이라니. 굳이 나무를 심지 않아도 온통 울창한 수림인데.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타닉가든이라고 해서 잘 다듬은 정원과 다양한 수종, 울긋불긋한 꽃들을 기대하였는데 어딘가 모르게 야생의 느낌이 물씬 난다. 아기자기한 산책로 따라 구절초나 코스모스와 같은 가을꽃이 제멋대로 피었다.

한적한 길을 따라 오르다 잠시 멈춰섰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평일이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입장료도 내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봐도 입장료 받는 부스가 없다. 정문이 열려 있었는데? 마치 개인 정원에 불쑥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레 걸어 올라가니 벽돌로 지은 성 같은 건물이 보인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목소리도 들려오고. 그제야 무단 침입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랫동안 고립된 생활을 하다보니 소심해진 게 분명하다.

보타닉온실부터 찾았다. 투명한 자재로 지은 두 동의 온실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온실도 늘 생각했던 수목원 온실과 약간 달랐다. 울긋불긋 화려한 꽃들이나 열대 식물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밖이나 다름없이 푸르름 일색이었다. 실내 정원과 연못을 꾸민 온실에는 간단한 음료를 파는 공간이 있었다. 텅빈 매대를 보니 착잡했다. 격리를 종용하는 시대. 여행자의 발길이 줄어들며 수목원도 깊은 낮잠에 빠진 걸까?

의외로 사진을 찍을 곳이 많았다. 셀카와 SNS의 시대라는 걸 주인은 잘 알고 있나보다. 수목원 곳곳에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다. 작은 폭포와 연못, 분수와 바위가 있고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조각품과 인테리어 소품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가을꽃과 벤치를 함께 담은 사진에 집착하여 연신 셔터를 누르고 다녔다. 원래 벤치를 사진에 담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여기는 찍고 싶은 벤치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온실을 나와 카페로 건너갔다. 커피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싸다. 대개 여행지 카페의 가격은 극악스럽게 비싸다. 도심에서 만나는 적당한 커피가격에 그만 기분이 좋아졌다. 널찍한 카페는 경건한 느낌을 주었다. 성당을 연상케 하는 창문과 고풍스러운 원목 탁자와 의자, 앤틱 소품이 진열된 장식장 때문인 듯했다. 서양영화에서 본 사교 클럽 라운지 같은 느낌이 물씬 났다.

“처음에는 입장료를 받았는데 오신 분들이 불평을 하더라고요.”

커피를 내리는 안주인이 솔직하게 말했다. 입장료를 없앴더니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단다. 개장한 지 3년이 됐다고 한다. 아래층에서 앤틱샵을 하다 레스토랑으로 바꾸는 도중에 코로나19가 퍼져 미루고 있다고 했다. 어쩐지 탁자 하나도 우아하게 보이더라니 고가구가 많았나보다.

“이렇게 깊은 산골까지 사람들이 와요?”

뭔 소리냐는 눈빛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많이 오나 보다. 하긴 나도 왔잖아. 코로나19가 횡행하는 요즘, 나처럼 코로나블루에 시달린 사람들이 꽤 찾는 모양이다. 그래 맞아. 한적한 수목원에서 하루 쉬었다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은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근데 어쩌다 수목원을… 평창이 고향인가 보네요.”

도시에서 살던 부부가 이 산골에서 수목원을 가꾼다니 놀라서 바보같은 질문을 했다.

“남편이 야생화를 좋아해요.”

아!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꽃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한다고 해도 수목원을 가꿀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마당도 제대로 가꾸지 않아 어지러운 풀밭으로 방치하는 나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사진을 마저 찍고 다시 오겠다며 카페를 나왔다. 안주인과 몇 마디 나누고서야 수목원에서 받았던 몇 가지 인상이 이해가 됐다. 만평이 넘는 수목원은 부부와 아들이 감당할 넓이가 아니다. 아무리 바쁘게 가꿔도 어디선가는 풀과 꽃들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좋아 보이는 건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애정이 없다면 이렇게 구석구석 꾸미기 어려울 것이다.

하긴 그래서 좋았다. 솔직히 깎은 듯 잘 다듬어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수목원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 자연의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도 아주 거칠지는 않은 공간이다. 수목원 뒤편 굵직굵직한 잣나무 산책로 또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연친화적인 수목원이구나. 게다가 앞으로도 꾸준히 가꿔나간다니 어떻게 될지 나중에 다시 찾아와야 할 곳 중 하나가 됐다.

어느새 햇살이 기울었다. 카페로 올라와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다 무심코 출입문 바깥을 보았다. 카페 테라스 정원 너머 멀리 산과 하늘이 보였다.

‘저 산, 저 하늘에 눈이 내리면 어떨까.’

상상만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울에 꼭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 여행 Tip
화이트크로우
보타닉가든 주차장과 맞붙어 이국적인 스타일의 집이 있다. 수제맥주집이다. 이 산속에 수목원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수제맥주집이라니. 그런데 TV예능프로그램에 나온 후 찾는 이가 꽤 있단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생각보다 실내가 좁았다. 작은 바와 서너개의 테이블이 있었는데 테이블마다 손님이 있었다. 아마도 뒤쪽으로 맥주를 만드는 설비가 있어 홀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정원이 예뻐서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다.

?  음식
방림막국수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된 막국수집이다. 미식가가 추천했다고 해서 내 입맛에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낫다. 처음에는 너무 밍밍해서 무슨 맛인가 싶었다. 옆 메뉴판에서 대관령 황태와 곡물로 낸 야채육수가 시원한 맛을 낸다는 설명을 읽고 다시 먹으니 느낌이 달라진다. 밍밍한 막국수와 어우러지는 짭짤한 황태 육수가 오묘한 맛으로 다가온다. 비빔막국수와 수육도 조리법을 읽고 나면 괜히 맛있어진다. 이를테면 ‘엄선한 돼지고기와 12가지 한약재와 야채를 넣고 삶았다’는 설명 같은 거.

? * 거기매운탕

방림면에서 대화방면으로 가다보면 있는 민물매운탕집이다. 개인적으로 민물매운탕의 최고는 잡어라고 생각한다. 잡어는 그때그때 잡히는 물고기로 끓이는데 크기가 작아 먹을 건 없지만 국물이 진해서 좋다. 게다가 가격도 어느 집이나 가장 낮은 편이다. 사진은 빠가사리매운탕이다. 빠가사리도 한때 쏘가리매운탕에 근접할 정도로 가격이 높았는데 양식을 한 이후 살은 두툼해지고 가격은 내렸다. 대중소로 나뉘는데 소자가 5만원. 쏘가리도 양식을 한다는데 이 집은 주위 분들이 잡은 자연산 쏘가리를 쓰고 있어 소자가 10만원이다.

글, 사진 이민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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