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가는 것도
여행이다
비 오는 날, 휴가 같았던 시골집 1박 2일
여행은 꼭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일까. 요즘 나는 아빠가 있는 시골집으로 향하는 주말도 하나의 여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금요일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 시골집으로 향할 때가 있다.
관광지를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예약해 둔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빠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너무 익숙해서 여행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길인데, 요즘은 이 길도 나에게 하나의 여행이 되어가고 있다.
여행은 꼭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빠와 마주 앉은
금요일 저녁
이번 주말에는 합천 부부횟집에서 향어회를 포장해 시골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준비해 간 먹거리와 향어회를 펼쳐놓고 아빠와 마주 앉았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도 좋았다.
함께 회를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 것만으로 금요일 저녁은 제법 풍성해졌다.
비가 내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
토요일 아침에는 찰옥수수로 간식을 먹었다.
점심에는 언니가 준비한 여러 가지 나물과 야채를 넣어 밥을 쓱쓱 비벼 먹었다.
시골집에서 먹는 밥은 이상하다.
특별한 음식이 아니어도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 먹으면 평소보다 더 맛있다.
밥을 먹고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시다가 어느 순간 거실에서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계획에도 없었던 작은 노래방.
뜻밖의 서프라이즈처럼 한참을 노래하고 웃었다.
모처럼 장대비가 내렸다.
정원에는 풀이 어느새
내 무릎까지 자라 있었지만
이번 주말에는 일은 1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쉽지 않았다.
그냥 먹고, 놀고,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휴가 같았던 시간
시골집에 내려오면 늘 해야 할 일이 눈에 들어온다.
정원도 손봐야 하고, 풀도 뽑아야 하고, 여기저기 정리할 것도 생긴다.
그런데 비가 많이 내리니 이번에는 모든 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가 생겼고, 우리는 그저 먹고, 노래하고, 커피를 마시고, 빗소리를 들으며 쉬었다.
풀은 그대로였고
할 일도 그대로였지만,
마음만큼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시골집으로 가는 것도
여행일까
생각해 보면 젊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여행은 늘 낯선 곳으로 떠나는 일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 처음 걸어보는 길, 새로운 장소를 만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행의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것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도 중요해졌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는 아빠가 기다리는 시골집으로 향하는 주말도 하나의 작은 여행이다.
서울을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고, 익숙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딸이 되어 보내는 시간.
관광지도 없고, 여행 일정도 없지만 그곳에서는 도시에서의 나와는 조금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 있는 주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처럼 시골에 부모님을 두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주말이 하나씩 있지 않을까.
부모님을 만나러 내려가는 길.
도착하면 함께 밥을 먹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반복되는 주말.
너무 평범해서 기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시간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인생은 대부분 그런 평범한 날들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두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차에 올라 아빠에게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 하고 인사를 한다.
늘 반복하는 인사인데도 이 순간의 마음은 매번 조금 다르다.
몸은 서울로 향하는데
마음 한쪽은
시골집에 두고 오는 것 같은 시간.
차는 다시 서울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한참을 가던 길, 비가 그친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
조금 전까지 마음 한쪽을 시골집에 두고 온 것 같았는데, 한동안 그 무지개를 바라보며 달렸다.
굳이 어떤 의미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비 내리던 주말의 끝에 만난 그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여행은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빠와 밥을 먹고,
가족들과 웃고,
빗소리를 들으며 쉬었던 평범한 주말.
그리고 다시 떠날 때
아빠에게 손을 흔드는 순간까지.
이런 시골집으로의 여행이
오래오래 계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