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읍 별미로드, 올림픽시장

평창의 매력은 무엇일까? 올 때마다 새롭고 알아갈수록 점점 더 좋은 평창이지만, 평창의 가장 큰 매력은 지역마다 특색있는 먹거리다. 척박한 산촌에 무슨 먹거리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짐작만으로 무시하면 섭섭하다. 산이 높으니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도 많다. 길과 길이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큰 마을이 형성되어 맛있는 먹거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쩌면 병풍처럼 둘러싼 산 덕분에 각 마을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시장의 금메달, 메밀전병과 메밀부침

평창읍의 별미라면 단연 올림픽시장의 메밀전병과 메밀부침이다. 올림픽시장 안에 대여섯 곳의 부침집이 있는데 장날이 아니어도 항상 문을 연다. 어느 집에서 맛을 볼 것인지 정하고 온 것이 아니라, 우선 시장 전체를 살폈다. 집집마다 이른바 부침 도사들이 연신 메밀전병과 부침을 부치고 있다. 부치는 대로 커다란 소쿠리에 쌓아 식히고 주문이 들어오면 큼지막하게 썰어 접시에 담아준다. 포장을 원하는 손님에게는 네모난 종이상자에 담아주는데, 한 번에 5~6만 원어치를 포장해가는 손님도 여럿이다. 메밀전은 식어야 더욱 구수하다니.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 평창읍의 특별한 맛을 선물해도 좋다.

시장 가운데 메밀나라에 자리를 잡았다. 이 집을 선택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팬과 화구의 배치다. 다른 부침집은 모두 손님과 마주 보게 배치했는데. 이곳만 손님과 직각 방향으로 두었다. 부침이 익으면 앞에 소쿠리에 담고 맞은편에는 전을 담아 손님상에 내는 사람이 따로 있으니 꽤 효율적인 배치다. 두 번째는 메밀부침을 부치는 내공이다. 할머니 한 분이 두 개의 팬으로 동시에 메밀부침을 만드는데 그 동작이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완벽했다. 율동적이고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움직임이 마치 잘 설계된 컨베이어시스템을 보는 듯하다.

그녀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메밀나라의 한임직 할머니는 메밀부침을 부친지 올해로 48년 째다. 시장건물이 없던 시절부터 비닐 포장을 치고 장사를 시작했다. 장날이 아니어도 매일 문을 열었고 그때 걸린 동상 때문에 아직도 다리가 불편하다.

“요즘은 좋아졌지요. (시장에) 지붕도 생기고. 나는 못했지만, 이걸로 아이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했으니 그저 고맙네요. 지금은 손자까지 3대가 함께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48년이라니! 여기저기 상처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을 그 오랜 세월, 아무렇지 않게 담담히 이야기하는 모습에 더욱 숙연해진다. 천 원짜리 메밀부침 한 장에 모두 담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가게 위에 걸린 방송 출연 현수막이 보였다. 그것도 전국에 내로라하는 명인들과 노포들이 등장했던 ‘3대OO’이다. 녹화할 때 어땠는지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방송 이야기가 한아름 쏟아진다.

“어느 날 어떤 처자들이 와서 부침 세트를 시키더니 반도 안 먹고 갑디다. 그러더니 문 닫을 때 다시 와서는 사실 어느 방송국 작가라며 출연해 달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그래서 갔지요. 돈(출연료)도 주고 옷도 주고, 끝나고 가면서 먹으라며 도시락도 여러 개 주데요”

한임직 할머니는 방송 출연했던 날을 생애 몇 번 안되는 ‘호강한 날’로 기억한다. 그리고 평창에서 메밀부침만큼은 당신 것을 최고로 알아준 것이라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낀다.

시장의 부침 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맛있다. 그중에서도 메밀나라의 메밀전병은 유난히 마음에 들었다. 구수한 메밀과 매콤 새콤한 김칫소가 기막히게 어우러진다. 담백한 맛을 즐겨 찾는 장년층과 자극적인 맛에 열광하는 청년층,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메밀가루에 콩 비지를 넣은 메밀비지전도 별미다. 탱글탱글하게 차지면서도 고소한 맛이 메밀부침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메밀나라의 ‘3대천왕세트’를 주문하면 메밀전병과 감자전 등 이집의 모든 메뉴를 맛볼 수 있다.

? 메밀나라

주소: 평창군 평창읍 평창시장1길 8-1
전화: 033-332-1446
메뉴: 메밀전병 1,000원, 메밀부침 1,000원, 메밀비지전 2,000원, 3대천왕세트 10,000원
이용시간: 06:00~19:00 월요일 휴무

? 취재 뒷이야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스크 너머로 낮게 들리던 한임직 할머니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모두가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내 할머니와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란 생각에 눈물도 났다.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방송 이야기가 떠올라 그때 영상을 찾아봤다. 그런데 맙소사! 한 할머니는 ‘평창 욕쟁이할머니’였다. 자전거를 타고 휙 나타나서는 좌판에 앉아있던, 무려 백선생에게 쌍욕을 퍼붓던 그 욕쟁이할머니였다. 맙소사! 이런 어마어마한 반전이라니. 이제 욕을 끊은 것일까? 유명한 분에게만 욕을 하는 것일까? 다음 평창 길에 여쭤야겠다.​

글, 사진 고상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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