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봐야하는 곳 거제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곳

해금강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거제에도 가슴 아픈 한국사의 상처가 남아있으니, 거제시 고현동으로 가면 6.25전쟁 당시 가장 큰 포로수용소였던 유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한국전쟁 당시 엄청난 숫자의 피난민과 전쟁포로가 수용되었던 이 곳은 1951년 공사가 시작될 무렵 6만명 정도를 수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후에 22만명으로 확대, 1951년 6월 말 여성포로 300명을 포함하여 최종적으로 17만 3000여명의 포로를 수용하였다.

휴전협정에 따라 포로송환이 시작된 것은 1953년, 이 후 거제도에 수용된 친공포로들이 모두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포로수용소도 폐쇄되었고 그렇게 버려진 터만 남아있다가 1983년 경상남도문화재자료 99호로 지정되고 1995년 유적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추진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공포로 가득 찼던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역사

포로들에게 위협이 없을 정도로 전투지역에서 충분히 떨어진 지역에 수용소를 만들라는 국제협약에 따라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지어졌는데 포로가 된 인민군과 중공군, 각지에서 몰려온 피난민과 이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인해 당시 거제도는 그야말로 사람들로 들끓는 섬이 되었다.

정신 없이 두려움과 공포로 우글대는 섬에서 포로수용소 내의 갈등 또한 깊어졌다. 반공포로와 공산포로가 혼합 수용되어 각기 스스로의 지휘조직까지 갖추며 수용소 내에서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 구타, 인민재판으로 이어지던 갈등들은 1951년 9월 공산포로가 ‘반동분자를 색출하여 처단한다’는 명목아래 반공포로를 학살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이 사태로 희생된 이가 무려 300명. 후에도 폭동은 계속되고 서로를 죽이는 일은 끊이지 않았으나 당국은 철조망 밖에서 감시만 할 뿐이었다.

당시 수용소의 참담한 분위기와 사회상은 강용준의 장편소설 <멀고도 긴 날의 시작>이나 최인훈의 장편소설 <광장>의 등장인물 이명준을 통해 어렴풋이 느낄 수가 있다.

밝음으로 지난 어둠을 치유하길 바라는 유적공원

현재 유적공원의 시설은 거의 다 공원 건립과 동시에 재현된 시설물들이다. 휴전을 맺고 포로들이 풀려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은 수용소를 멀리하게 되었고 경비소 집무실과 경비대막사 등 건물의 일부만이 남아 형태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포로수용소 유적박물관은 각종기록물과 영상자료가 가득한데 이는 포로들의 이송, 투쟁, 송환에 대한 각종 사건들의 실물기록에 의한 실증적인 자료들이다. 담담하게 전시되어 더욱 슬프게 보이는 빛 바랜 물품들과 이야기는 동족전쟁의 부끄러움과 아픔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준다.

당시의 사진과 모형이 전시된 생활관과 감시초소, 취사장, 생활도구까지 완벽하게 재현된 야외막사는 물론 포로들간의 격돌장면을 느낄 수 있는 체험관 등을 천천히 돌아보다 보면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물론 공원이란 이름에 걸맞게 분수광장, 야외공연장, 어린이 평화정원까지 갖추고 있다. 무게만 실린 딱딱하고 재미없는 곳이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나들이 삼아 다녀오기에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민족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의 희망하는 역사의 현장에는 밝은 빛이 가득하다.

이달의 일정과 행사는 유적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방문 전 한 번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SMART INFO
가는 법: 거제시청에서 거제도서관을 향해 10분 정도 걸으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입구가 보인다.
이용시간: 하절기에는 9시부터 18시까지, 동절기에는 9시에서 17시까지 이용 가능하며 매월 넷째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이용요금: 어른 7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3000원 / 주차료 승용차는 3시간에 2000원 버스는 5000원

사격체험, 거울미로&착시술 같은 체험시설은 별도의 요금을 내야 이용이 가능하다.
동물을 데리고 입장할 수 없으며 전시관 내에서는 사진촬영 금지.

 

 

 

 

Register

You don't have permission to regi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