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호 꼬부랑길’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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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과 양구 사이, 소양호를 끼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소양호 꼬부랑길’이 있습니다. 오래전 춘천에서 양구로 넘어가는 길을 만들며 사명산(1199m)을 둘러가기 위해 소양호 따라 길을 냈지요. 46번국도. 한때는 춘천과 양구를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답니다. 그러나 ‘보다 빨리’의 기치 아래 사명산을 관통하는 수인터널, 웅진터널, 웅진1터널, 웅진2터널, 웅진3터널이 뚫리고, 새 46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옛 46번 국도는 도로번호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버려졌지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를 바 없는 길. 일직선으로 뚫린 새 국도를 두고 굳이 구불구불 옛 국도를 지나는 운전자는 없었고, 내비게이션도 더 이상 옛 길을 알려줄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그래요, LTE를 넘어 LTE-A 속도로 달려가는 시대에, 느려터진 길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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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얼마 전부터 버려진 옛 길을 발견한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터널에서 터널로 오가는 바쁜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옛 46번 국도는 하늘, 숲, 호수가 어우러진 휴식처가 되었고, 안전한 도보여행과 한가로운 자전거 여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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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기지역에서 ‘소양호 꼬부랑길’로 가기 위해선 먼저 <추곡약수터>를 찾아가야 합니다. 서울, 마석, 가평, 춘천, 양구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를 마냥 따라가다가는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답니다. 새 46번 국도에서 <추곡약수터>로 들어섰다면 옛46번 도로 입구에 닿은 셈입니다. 참, 추곡약수는 톡 쏘는 맛을 내는데 위장병, 빈혈, 신경통, 무좀에 효과가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죠. 강원보라는 이가 꿈에 산신령의 계시를 받아 약수를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추곡약수터> 입구에서 <양구 선착장>에 이르는 옛 46번 국도는 소양호를 끼고 구불구불 굽이를 만날 때마다 동양화 화첩을 넘기며 휘돕니다. 무려 160첩이 넘는 거대한 진경산수화.

길은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지나는 차량이 거의 없다 보니 기분이 좀 야릇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멕 맥카시의 미래소설 <더 로드>나 대니 보일 감독의 공포영화 <28일 후>의 한 장면 속으로 뚝 떨어진 기분. 담쟁이가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고, 철제 가로대는 무성한 잡초로 뒤덮인 지 오래. 그저 2차선 도로만 허연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을 뿐이죠. 인간의 기억으로부터 잊힌 덕분에 옛 길 위의 자연은 치유기간을 갖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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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쫓아오며 어서 가라고 빵빵 거리는 차도 없으니 ‘내 마음의 풍경’과 만나면 아무데고 멈춰 풍광을 즐길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래 길이다 보니 주변에 민가가 드문 ‘소양호 꼬부랑길’은 밤이 되면 정말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는 ‘오지’가 되지요. 집도 사람도 가로등도 차도 없고, 하늘의 달빛과 별빛 외 빛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는 순수 어둠.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몇 번할 무렵이면 어둠이 둥지를 틀고, 머리 위로 은하수가 지나가는 걸 목격할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고요? 텅 빈 길옆에 차를 세워두고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거든요. 실은, 길 한 가운데서 샤워도 했답니다. 샘물을 받아 길 위에서 벌거벗은 채 물을 끼얹어 땀을 씻었지요.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그 길 위에서 알몸을 훔쳐보는 건 구름장 사이로 얼굴을 내민 달뿐이었어요.

차창을 활짝 열고 머리카락을 넘기는 바람의 손끝을 느끼고, 소양호 굽이굽이 길이 만들어낸 멋진 경치를 감상하다 보면 휴게소를 겸한 옛 <양구 관광안내소>에 닿을 것입니다. 근데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휴게소 건물은 번듯한지만 담쟁이와 잡초로 뒤덮인 상태고 주차장은 텅 비어 있어요. 옛 양구 관광안내소를 지나 양구 방향으로 좀 더 다가가면 변화가 느껴집니다. 전깃줄을 담쟁이랑, 한가한 휴게소랑, 풀이 도로 위로 넘어오는 건 마찬가지지만, 소양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새로 조성되어 있고, 양구 출신 이해인 수녀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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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소양호가 물을 가두는 용도로만 사용되지만 한때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뱃길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답니다. 1973년 준공 당시만 해도 춘천, 양구, 인제를 아우르는 남한 최대 인공 호수였지요. 면적만 해도 1600만㎡에 저수량 27억 톤. 사람들은 배를 타고 춘천에서 양구를 오갔지요. 장장 27킬로에 이르는 뱃길. 춘천 소양강댐과 양구 선착장을 이어주던 쾌룡호는 유류비 인상과 탑승객 감소로 운행을 중단하기도 했는데, 근래 춘천 가는 길이 활성화되고 소양강댐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면서 주중 2~3회, 주말 4회 운행을 한답니다.

지난 6월부터 어딘가로 여행은 떠나고 싶은데, 사람들 붐비는 곳은 왠지 꺼려지죠? 그래서 텅 빈 <소양강 꼬부랑길>을 떠올렸어요. 출퇴근길마다 치이고 밀리고, 앞차는 가지 않고 뒤차는 빵빵대는 길에서 매일 시달리는 도시인. ‘터널에서 터널로 오가는 삶’에서 빠져 나와 옛 46번 국도를 달리거나, 아름다운 이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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