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서 찾은 가을, 길상사 꽃무릇

 

가을이면 유독 법정 스님의 글들이 살아 숨 쉬듯 가슴에 와 꽂힌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 있는가
모두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가을이 곁에 와 있건만 온전한 가을을 즐기지 못하는 요즘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혹독한 시간이요
또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하루를 버티면 살아내는 시간이다.
햇살 가득한 평일 오후 길상사를 찾았다. 이렇게 따뜻한 햇살이 가을이었지, 활짝 핀 꽃무릇을 보며 이게 가을 풍경이었지, 행복한 표정으로 꽃처럼 피어나는 얼굴, 이게 가을을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지. 길상사 곳곳에서 보고 느낀 것이 가을이었음을, 가을 안에 내가 있음에 감사했다.

 

 

길상사는 성북구에 위치한 도심 안 사찰로 시민들의 쉼의 공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 1997년 고급 요정 `대원각`을 운영했던 김영한이 대원각을 송광사에 시주하면서 불교 사찰로 재 탄생되었다. 대원각은 최고급 요정이었다. 이곳은 김영한과 백석 시인의 사랑, 법정 스님의 인연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다. 대원각 공덕주인 김영한과 시인 `백석`이 사랑했으나 신분 차이로 끝내 결혼하지 못한 아픈 사랑의 장소이기도 하다.
백석은 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자야`를 등장시켜 전했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백석과 이별하고 대원각에서 김영한은 홀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10년여 동안 스님에게 간청해 지금의 길상사 터를 시주하게 된다. 법정 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렸다. 1999년 김영한이 세상을 떠난 뒤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공덕비가 세워졌다. 법정 스님은 처음 출가하신 사찰인 송광사의 옛 이름인 길상사에서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사랑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새로운 인연으로 사랑을 승화시켜 탄생된 곳이 길상사다. 순간순간 흘러가는 가을을 잠시나마 곁에 두기에 이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 있을까.

길상사는 한 사람의 사랑이, 좋은 인연이, 참된 신념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뻗어나가는지, 시대와 종교를 뛰어넘어 존경과 사랑받게 되는지 다시 깨닫게 되는 곳이다. 행복은 그냥 스쳐가는 바람결에 잠시, 활짝 핀 꽃무릇의 생기처럼 순간순간 느끼고 감사하면 될 것이다. 너무 혼란스러운 가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상사화의 붉은 물결처럼 우리 가슴에도 따뜻한 불꽃이 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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