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연가(戀歌)

에스제이진-덕수궁

누가 그런 망언을 했던가? 『덕수궁 돌담 길』을 연인이 함께 걷게 되면 헤어지게 된다고. 확실한 출처를 알 수 없는 뜨내기 소문에도 『덕수궁 돌담 길=정동길』은 더우나 추우나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솔로부대들의 마음에 질투와 염장을 지르는 커플들의 천국, 『덕수궁 돌담 길』의 매력 넘치는 장소들을 찾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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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길에서 느껴지는 한국의 맵시, 『덕수궁 돌담 길』

『덕수궁』 입구, 호기로운 왕궁 수문장들의 늠름한 모습들을 뒤로하고 호젓한 길로 들어서면 여기가 바로 가을이 되면 더욱 멋스럽다는 『덕수궁』 돌담 길의 시작이다. 반듯하면서도 구불구불한 길목을 따라 묵묵히 역사의 굴곡을 이겨낸 단단한 돌담은 조선 왕궁의 위엄이 느껴지는 것인지, 그 담마저도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게다가 끝이 보이지 않는 구불한 길 모양에 해도 가려 버릴 것 같은 담의 높이는 왠지 모를 은밀함 마저 더해져 그냥 조용히 걷기만 해도 서로의 마음이 어느 새 붉은 실의 전설처럼 끈으로 단단히 이어진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그래, 네 생각을 나는 알아.’ 그렇게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스하고 포근한 대화가 말없이 이어진다. 길이 주는 따스한 감성은 맞잡은 손처럼 서로의 마음을 단단히 여며준다.가을을 맞아 노랗고 벌겋게 물든 단풍나무와 가로수들이 멋들어지게 서 있는 이 길의 호젓함은 걷고 또 걷고 싶게 만든다.
누군가의 추억이 쌓이고 나의 추억도 겹겹이 쌓인 돌담 길, 그래서 오래도록 노래로도 불리워지며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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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길의 첫 번째 명소

역사의 이야기 그리고 근대 건물이 주는 색다른 매력, 정동교회.
<정동교회>와 <정동극장>이 중심이 되는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 길』의 또 다른 이름이지만, 대한제국역사의 자취와 함께 근대의 모습이 오롯이 남아있어 묘한 매력을 준다. 게다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희끗희끗한 붉은 벽돌이 고풍스러운 최초의 현대식 개신 교회건물 <정동교회>. 유럽 대저택이 언뜻 떠오르는 하이얀 창과 아담한 건물 틈 사이사이 좁다란 길목이 현대식 건물과는 다른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건물이 ‘독립선언문’을 비밀리에 옮겨 적은 장소라고 하니,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게 된다. 예스러운 빛깔의 앤티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예배당 안은 또 하나의 유서 깊은 물품이 있는데, 1918년에 봉헌된 한국최초의 파이프 오르간이다.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소리를 듣는 기회는 흔치 않다. 운 좋게 들을 수 있다면 잠시 듣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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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명소

시간이 겹겹이 쌓인 또 다른 장소, 서울 시립 미술관
정동길 노오란 은행나무 잎을 사각사각 밟으며 걷다 보면 <서울 시립 미술관>의 작은 정원이 보인다.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 운치 있는 이 길은, 자연을 닮은 예술 조각품과 함께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잠시 멈춰 서서 함께 했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어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판소에서, 이제는 피카소와 고흐의 작품이 전시되는 미술관으로, 타임워프 하듯이 시간이 겹겹이 쌓인 <서울 시립 미술관>의 모습은 근대 건축물의 절정을 이룬다.

   세 번째 명소

잘록한 곡선이 버선코 같구나! 정동전망대
돌담 길 옆, <서소문청사>13층에는 『덕수궁』의 우아미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날카롭게 하강하다 부드럽게 위로 솟구친 절묘한 곡선의 기와지붕! 우리나라 궁궐에서도 가장 많이 해체된 궁이지만 그 누구도 그 위상을 꺾지 못한 『덕수궁』의 고귀함이 <중화전>과 <함녕전>의 짙은 회색 지붕에서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예스러운 궁의 모습, 그리고 그리스 신전 같은 <석조전>, 오묘한 건축물의 조화로움이 『덕수궁』을 개성 있는 궁으로 만든다.

에스제이진-정동전망대

우리나라 모든 궁궐에는 사연이 있다. 하다못해 길 하나 오래된 고목에도 사연과 전설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암흑이 뒤덮인 대한제국의 『덕수궁』만 하랴. 아름답지만 처참하고 뼈아픈 과거가 있는 궁.
『덕수궁』의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전통적인 건물과 모던한 세련미를 가진 근대식 건물의 조화로움에서 산책을, 건물 곳곳에 스며있는 역사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되짚어보자.

대한제국 황제의 숨결이 깃든 『덕수궁』

조선의 왕족, 월산대군의 개인저택지에서 대한제국 초대 황제의 꿈을 담은 정궁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덕수궁』의 현재는 그 시절 격변하던 역사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옛 궁궐의 모습, 우리 전통 양식 건축물과 서양의 건물 양식이 혼합된 개성을 가진, 다른 궁궐보다는 작은 규모의 『덕수궁』.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리던 『덕수궁』은 고종 황제가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德壽宮)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지금보다는 상당한 규모였지만 오로지 이곳이 궁궐의 한 터였음을 말해주는 것은 정동 곳곳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큰 고목들뿐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훼손되고 축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가 걸어온 『덕수궁 돌담 길』이 궁궐의 외곽이 아니라 궁의 일부였다니, 성인 2명의 키를 합친 것 같았던 드높던 돌담이 떠올라 그 시절 궁의 웅장함이 어땠을 지 쉽게 상상되질 않는다.
<중화전> 앞, 비바람에 침식되어 줄지어 늘어선 품계석이 역사의 흔적을 묵묵히 대변해준다.

    『덕수궁』의 중심, 중화전

에스제이진-덕수궁-중화전

왕의 위엄이 서린 <중화전>은 1904년 함녕전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후에 재건되었는데, 처음에는 중층으로 지어져서 <중화전>이라 하였다 한다. 현재는 단층의 모습으로 우리 궁만이 가진 절제된 화려함이 담긴 기품, 그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드러내고 있다. 오로지 왕만이 걸을 수 있는 중앙 길 양 옆으로 비바람의 풍화로 깎이고 틀어진 품계석이 나란히 줄 지어 있는데, 서열에 따라 걸을 수 있는 위치가 있었다고 하니 그 시절 왕의 위상이 지금은 생소하게 느껴진다높다란 돌계단 위에 날렵한 기와를 얹은 <중화전>은 어둑해지는 시간이 되면 노란 조명 빛의 옷을 덧입는데, 잘록하게 말려 올라간 처마 밑으로 화사한 색감의 단청이 눈 안에 가득 차 계속 아른거린다. 단아하면서도 선명했던 낮의 빛깔과는 달리 훨씬 더 부드럽게 느껴지는 밤의 빛, 조명 빛을 받은 <중화전>의 모습이 덕으로 세상을 이끌려 했던 왕의 속내를 은은하게 드러내는 것만 같다.

    차가운 돌 속에 담긴 한 남자의 꿈, 석조전

에스제이진-덕수궁-석조전

대한제국의 자주적인 독립을 꿈꾸던 황제, 고종. 고종은 <석조전>을 지으면서 대한제국의 위상을 널리 퍼트려 자주 근대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갖기를 꿈꿨다. 조선의 궁궐 중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은 10월 13일, 5년여의 긴 복원 공사를 마치고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한 <석조전>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당시의 가구들을 각각의 장소에 맞게 원래대로 배치해 놓았는데, 지금 보아도 세련된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황제의 침전, 그리고 기품이 느껴지는 외국 사신 접견장소의 모습이 교과서 속에서만 보아오던 흑백의 역사가 이제야 제 색을 찾은 것만 같다. 고종 황제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이루고자 했던 꿈은 돌로 지은 집 <석조전>에 아직도 스며들어 있었다.

   수수한 매력, 목재 중층 건물 석어당

에스제이진-덕수궁-석어당

『덕수궁』에서 유일한 목재 중층 건물인 <석어당>은 2층이라는 건물의 구조 말고도 또 다른 특색이 있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수수함과 그 수수함이 가진 고고한 매력이 궁의 건물이면서도 궁궐의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기 위해 칠하는 단청인데, 오히려 <석어당>은 단청을 칠하지 않아 꼿꼿한 절개를 지키는 선비처럼 검소하고 정갈해 보여 그 매력이 배가 된 것 같다. 겹겹이 이어진 선과 금빛색의 화려한 단청이 칠해진 건물과 새로운 양식의 서양 건물들 틈에서 나무 본연의 색을 가진 <석어당>의 그윽함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고요한 대나무 숲을 사색하며 걷고 있는 느낌이 든다.

   아픔이 배인 역사의 현장 중명전

희망과 아픔이 배인 현장, 나라를 잃을까 하루하루 좌불안석이던 그 시절, 그 역사의 현장을 오롯이 지켜보았던 장소, <중명전>을 찾아가 볼까 한다.<정동교회> 옆에 자리한 <중명전>은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였다가 『덕수궁』 안으로 편입되면서 황실의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 후에 『덕수궁』 축소 문제로 다시 『덕수궁』의 외부로 떨어져나간다.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그 용도와 건물주가 계속 변동되며 <중명전> 또한 크게 훼손이 되는데 <문화재청>에서 건물을 구입, 2007년 『덕수궁』에 편입시키며 복원 작업을 완료하였다. 현재 석양을 닮은 오렌지 빛의 벽돌로 이루어진 근대화의 의지를 담은 건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중명전> 1층에는 우리 역사의 뼈아픈 과오 ‘을사늑약(=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치욕의 장소가 있다. 일본의 강제 외교권 박탈은 결국 식민지의 시작이 되었으며 대한제국의 자주 근대화의 꿈은 그렇게 무너지고 만다. 고종은 <만국 평화 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폭로하기 위한 밀사를 파견하는데 일본의 동맹국이었던 영국의 방해로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고종은 ‘헤이그 특사’의 일로 황제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한 나라의 운명이 뒤바뀐 이 모든 일이 <중명전>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덕수궁』 어느 한 곳도 굴곡진 사연이 없는 곳이 없다. <중명전>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사 속에서 고종 황제의 희망의 끈은 <중명전>의 이름처럼 『덕수궁』 안에서 계속 그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덕수궁

위치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문의 02)771-9955
http://www.deoksugung.go.kr/default.asp

입장시간 09:00~20:00 (퇴장 ~21:00)
입장요금 개인(만25세이상) 1,000원 / 단체(10인이상) 800원 / 할인 및 외국인 요금은 홈페이지확인
※덕수궁미술관은 덕수궁 관람권과 별도로 구입해야 합니다.
관람안내 석조전 (1,2층은 인터넷 예약만 가능/ 만65세 이상 및 외국인은 예약 없이 선착순 입장)
중명전 10:00~17:00 (해설은 홈페이지 확인)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2번 출구 /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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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 광화문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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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 영원

에스제이진 에디터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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