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과 입에 미소를

special-2015-02

 

느닷없는 얘기지만, 겨울이 와도 수영복이 잘 팔린다고 해요. 얼마 전에는 한겨울 수영복 매출이 스키복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다더군요. 여름휴가철 뿐 아니라 겨울에도 해외여행을 하는 관광객이 늘고, 날씨가 추우니까 기왕이면 따뜻한 나라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한겨울에도 수영복 매출이 늘어나는 현상. 나도 강렬한 태양열을 듬뿍 받아 따뜻하게 데워진 바다 물에 몸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거나, 야자수 우거진 그늘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거나, 길을 걷다가 이마에 땀이 배이기도 하는 거리를 걷고 싶어집니다.

종종 겨울을 남쪽 나라에서 보내곤 했습니다. 겨울을 피해 남쪽 나라로 떠났던 건 아니고, 일찌감치 남쪽으로 튀어서 그 곳에서 장기체류하며 남국의 도시와 마을을 여행하며 이동하곤 했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들이 이어지니 남국에서 여행하던 나날들이 야자수를 뒤흔들던 남풍처럼 내 머리카락을 자꾸 휘젓습니다.

 

special-2015-02-04

 

그 해 겨울엔 <화양연화>를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된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로 여행을 갔더랬습니다. 우리는 통상 ‘앙코르 와트’라고 부르곤 하는데, ‘앙코르 와트’는 400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대지에 세워진 수많은 사원들 중 가장 유명한 사원의 이름. 앙코르 와트 외에도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 레이더>로 유명해진 ‘앙코르 톰’을 비롯 ‘바이욘’과 ‘반띠아이 스레이’ 등 하루 만에 도저히 다 둘러볼 수 없는 수많은 유적이 펼쳐져 있는 곳이 앙코르 유적지죠. 마치 신이 넓은 대지에 아무렇게나 사원이란 씨앗을 흩뿌려놓은 듯 울창한 숲 사이로 띄엄띄엄 솟아오른 탑들의 풍경.

나는 ‘앙코르 유적지 7일 입장권’을 끊고, 씨엠립에서 열하루를 머물렀습니다. ‘앙코르 와트’나 ‘앙코르 톰’처럼 호텔에서 가까운 사원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고, 반띠아이 스레이처럼 멀리 떨어진 사원은 ‘툭툭’이라고 부르는, 오토바이 뒤에 마차처럼 매단 수레를 타고 오가곤 했지요. 사나흘 사원을 구경하고 난 다음날은 앙코르 박물관에서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관람하며 하루 종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씨앰립 어린이 병원에서 열리는 자선모금 바이올린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하고, 캄보디아를 떠나기 전날의 일몰은 수상가옥들이 즐비한 똔레삽 호숫가 마을에서 맞이했지요.

 

special-2015-02-02

 

열하루를 보내는 동안 앙코르 와트만 네 번을 들락날락했군요. 한번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에서, 한번은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의 아침에, 그리고 소낙비 내리던 한낮과 평원이 황금빛으로 물들던 저물녘에. 그렇게 네 번이나 찾아가 오랜 시간을 둘러보고도 무언가 다 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에 매번 돌아서기가 힘들었던 기억. 그러던 어느 날이었는데요, 앙코르 유적지의 사원들 입구와 출구엔 기념품을 파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느 사원이든 들어가고 나올 때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들곤 하지요. 그래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실은 여행지가 아니라 이 아이들과 얽힌 이야기입니다.

팔찌, 목걸이, 피리를 들고 나를 올려다보던 아이들은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쩌면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니고 있어야 할 나이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가볍고 작은 기념품을 손에 들고 다니며 관광객을 쫒아 다녔지요. 게다가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는지 우리말도 곧잘 했습니다. 한국인이란 걸 눈치 채면 “원 달러, 투 달러…”라고 대신 “일 달러, 이 달러…”라고 말했고, 심지어 “언니, 이거 안 비싸요!” “오빠, 하나만 사 주세요.” 그렇게 외치며 갖고 온 기념품을 사줄 때까지 졸래졸래 따라다니기도 했지요. 그러나 모든 아이들의 기념품을 살 수는 없었기에 나는 각 사원을 들릴 때마다 피리라든가, 엽서라든가, 팔찌라든가, 그런 작고 가벼운 기념품들을 하나씩 사곤 했습니다.

 

special-2015-02-03

 

그날도 내 키보다 더 큰 신의 얼굴 조각상이 사면을 바라보는 사원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나오려던 참이었습니다. 문을 나서자 이번에도 아이들이 달려와 나를 둘러쌌지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나는 그 아이들 중 한 아이의 팔찌를 샀습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분명 다르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지난 일주일간 내가 피리나 엽서나 팔찌를 산 아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매한가지. 그런데 “피리 사세요!” “엽서 사세요!” “팔찌 사세요!” 소리치는 수많은 아이들 중 나는 무의식중에 ‘눈과 입에 미소가 있는 아이’의 물건을 사고 있었던 겁니다. 신의 얼굴이 새겨진 문 아래를 지나고 있었던 까닭일까요?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어쩌면…”하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래서 신에게 수많은 우리들이 “이걸 이루게 해 주세요” “저걸 이루게 해 주세요” 소원을 빌 때, 신도 모든 이의 소원을 한 번에 다 들어줄 수는 없기에 우리들 중 ‘눈과 입에 미소가 있는 이’의 기도를 먼저 들어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나는 물음표를 품에 안은 채 고개 돌려 신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소리 내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빙긋이 미소를 지었습니다.

 

special-20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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