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발견하는 작은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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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수단은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 중 최고로 꼽을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다. 목적지까지 편하고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최대의 장점을 포기하고 작은 체구의 여인이 배낭을 둘러메고 약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빠름을 포기하고 천천히를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은 ‘지나쳤을 것들’이다. 처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족집게 강사처럼 꼭 필요한 정보와 함께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정해경 작가. 빠름을 선택했다면 지나쳤을 것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인 그녀를 에스제이진에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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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읽을 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떠났던 산티아고 도보여행에서 운명처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고 이후 여행작가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타이완과 일본(오사카, 교토)이 여행 안내서를 출판했으며 다음(Daum)에서 ‘작은천국의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우수블로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혼자만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머물기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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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여행을 하는 사람들 위해 책을 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어딘가를 가는, 가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가이드북은 대부분 백과사전식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의 경우 정보가 많으면 좋을 것 같아도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의사결정을 더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여행서입니다. 따라서 처음 그 도시를 여행할 사람들을 위해 백과사전식의 정보보다는 꼭 가야하고, 꼭 먹어야하고, 꼭 해야 하는 핵심정보만을 담은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배낭여행에 익숙하지 않고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이 정보를 찾아야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고 싶었습니다. 배낭여행이 처음인 사람들을 위해 ‘처음’ 어딘가를 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아무래도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그냥 떠나면 됩니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떠나기 전에 가졌던 두려움은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두려워했을까’라며 미소를 짓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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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도보 여행이 인생에서 어떤 터닝포인트가 되었나요?

제 인생은 산티아고 도보여행전과 산티아고 도보여행 후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문명화된 시대에 부산에서 신의주에 해당하는 약800k를 단지 내 두 발로 걸어서 여행한다는 것은 매일매일 자신의 육체적인 고통을 시험하면서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보게 되는 여행이었습니다.  산티아고 도보여행은 그 길 안에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이 들어 있는 길이었고 고행과도 같은 고통 속에 비로소 제 자신과 오롯이 만날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마음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든 여행이 끝나던 날 ‘이전의 인생이 오로지 제 자신의 편안한 생을 위한 삶이었다면 생의 후반기는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싶다.’ 고 자연스럽게 생각이 모아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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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30대를 지나 어느 덧 40대의 여인이 되셨는데
   연령대에 따라 여행스타일도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나이 때문에 여행스타일이나 패턴이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길게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패키지위주의 트렁크 여행을 했기 때문에 사실 관광이지 여행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여행의 패턴은 직장생활이 아니라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비로소 관광이 아닌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봐야할 것 같아요. 하지만 단순히 프리랜서 생활이 여행 패턴이 변화를 가지고 왔다기 보다는 그동안 여러 곳을 관광위주로 다니면서 도시의 랜드마크나 스폿 등을 충분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진정한 여행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처음 해외여행에서 파리를 갔다면 에펠탑을 가지 않고 뒷골목만 다니면서 사진 한 장 찍지 않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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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지에서 겪는 일이 굉장히 많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주세요

저는 해외여행을 가면 가급적이면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이나 현지인들의 문화를 경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편입니다. 타이베이를 여행했을 때 기억이 가장 많이 남는데요. 현지에서 우연히 매우 유명한 로컬 음식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CNN에서 타이완 사람들이 꼭 먹는 음식 40가지 중 하나로 선정된 음식인 ‘텐부라’를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현지인들만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인 제가 들어가니 매우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지요. 저는 당당히 ’텐부라’를 시켰고 텐부라를 먹어보니 짜기만 하고 너무 맛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그걸 지켜보던 현지인이 딱 봐도 매워보이는 소스를 찍어먹기를 권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매운 걸 못 먹는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소스에 찍어먹어야 맛있다며 그 정도 매운 것은 괜찮다고 계속 권하길래 소스에 찍어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너무 매워서 눈물 콧물 쏟아가며 재채기가 멈추지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 소스를 권했던 현지인이 급 당황해서 슈퍼로 뛰어가서 물과 음료수를 잔뜩 사들고 오셔서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는 헤프닝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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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를 둘러보니 걷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걷는 여행을 즐기게 된 계기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농부인 아버지와 골목이 있는 동네와 뒷동산이 있는 곳에서 자란 유년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원래도 옛것이 남아 있는 풍경에 자연스레 이끌리는 편이긴 했습니다. 또한 산티아고 도보여행을 통해 느리고도 천천히 걸으면서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 바람소리 등 별 것 아닌 듯 생각되던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유년시절의 기억과 더불어 후천적으로 깨닫게 된 느림이 주는 미학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골목여행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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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법정 스님은 여행을 ‘자아발견 혹은 자기탐구를 하는 시간’ 이라고 정의를 하셨습니다. 저 역시 진정한 여행이란 여행을 통해 자신이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변화가 당장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관광 혹은 여행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여행이라는 한 단어에 넣기보다는 관광과 여행을 구분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때론 관광도 필요하겠고 경우에 따라서 어떤 곳은 관광을 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관광에서라도 무언가 자신의 닫힌 눈과 마음을 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찾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더불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굳이 시간과 돈을 내어 먼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여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긴 여행이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그마한 변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내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여행이야 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정해경작가
저서 처음 오사카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 처음 교토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 처음 타이완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블로그 ‘작은천국 아날로그 감성을 담다’ http://blog.daum.net/chna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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